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 || ||[[파일:36992ac828f2387bddb130079d8ba45c.jpg|width=100%]]|| || 왼쪽부터 재정복의 주역들인 벨라사리우스, 유스티니아누스 대제, 나르세스[* 현재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모자이크다.] ||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은 [[유스티니아누스 대제]]가 서로마의 고토를 수복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전쟁들이다. 39년에 이르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치세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20년간 지속된 대사업이다. 재정복 외에도 유명한 업적인 [[로마법 대전]] 편찬, [[하기아 소피아]] 건설도 동시에 진행되었고, 따라서 치세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. 유스티니아누스는 청년 시절부터 유구한 로마 역사를 공부하며 고토 회복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, 황제 즉위 직후부터 그 뜻을 알렸다. 시민들의 시큰둥한 반응과 증세에 대한 불만은 니카의 반란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중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으나, 반란 진압 이후에는 원정을 강행할 수 있었다. 서로 승패를 주고 받으며 대등하게 싸웠던 [[사산 제국]]에게 황금을 바치면서까지 동방을 안정시키고 대군을 편성하여 서방의 고토 회복에 나선 것도 그 이유. 한편 교회에서도 비 정통파인 아리우스파를 믿는 국가였던 동고트와 반달 왕국에 대한 원정에 전적으로 지지를 보냈다. 특히 정통파 기독교인 니케아-칼케돈 파를 탄압하는 반달 왕국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이었으며, 동고트 왕국을 정복함으로써 동방 교회가 서방의 로마 교회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강해질 것을 기대하기도 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